소통과 화합으로 '하모니 코리아'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이지만 크리스마스 이야기 하나 하자. 크리스마스에 초대받은 동자승 이야기다. 단짝 친구한테서 크리스마스때 교회에 와달라는 말을 들은 동자승. 신앙을 지키자니 우정이 울고, 우정을 지키자니 신앙이 훼손될 갈림길에 놓이게 된다.
거짓말도 할 수 없는 순진한 동자승의 고민은 큰스님의 ‘다녀오라’는 허락으로 단숨에 해결된다. 교회에선 목사님에게서 큰스님께 안부를 전해달라는 부탁까지 받고 ‘메리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돌아오는데, 알고 보니 큰스님과 목사님은 오래전부터 친한 사이였던 것이다.
박관호 작가가 지은 <동자승의 크리스마스>라는 동화다. 이런 동화가 아무렇지 않게 쓰이고 읽히는 나라가 우리나라다.
유럽과 중동에선 기독교와 이슬람이 충돌하며 천년 가까이 피를 흘렸고, 지금도 세계 각지에서 서로 다른 종교적 신념이 갈등과 폭력, 테러를 부르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다양한 종교와 종파가 존재하는 데에도 불구하고 종교적 대립과 갈등이 거의 없는 나라가 우리나라다.
서로 다른 믿음에 대해 억지로 바꿀 것을 강요하지 않고 공존의 지혜로 껴안아온 전통을 가진 우리나라가 지금 종교를 제외한 사회 각 분야에서는 세계적 수준의 사회적 갈등과 마찰을 겪고 있다.
우리나라의 사회적 갈등지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2개국 중 터키, 폴란드, 슬로바키아에 이어 네 번째로 높다. 삼성경제연구소 박준 연구원에 따르면 수치로 따져서 0.71로 OECD 평균(0.44)보다 1.6배 정도 높다. 사회적 갈등은 경제적 손실로도 이어져 사회갈등으로 인해 매년 국내총생산(GDP)의 27퍼센트가 지출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대통령 직속으로 사회통합위원회가 출범하고 지난 7월 청와대에 사회통합수석실이 신설된 것은 우리 사회의 갈등이 그만큼 심각하고 통합이 절실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우리는 어쩌다 공존과 관용의 정신을 잃어버리고 대립과 갈등에 휩싸이게 된 걸까. 사회통합위원회가 지난 1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의뢰해 실시한 ‘사회통합 국민의식조사’ 결과 응답자의 대다수(65퍼센트)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부심을 느낀다고 답했지만 우리 사회의 갈등 역시 높은 수준이라고 응답했다.
최고 수준을 5점으로 놓고 봤을 때 응답자들은 계층(4.0점), 이념(3.82점), 노사(3.77점), 지역(3.61점) 순으로 우리 사회의 갈등이 심각하다고 보았다. 그리고 계층, 노사, 지역, 이념 순으로 해결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가장 심각하고,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갈등으로 꼽힌 계층갈등과 관계 깊은 사회경제적 기회균등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응답이 많았다.
응답자의 48.3퍼센트가 사회경제적 기회균등이 보장되지 않는다고 답했으며, 기회균등이 보장된다는 응답은 18.3퍼센트에 불과했다.
또 국회, 정부, 언론, 법원, 경찰, 은행 등 6개 공공기관에 대해 신뢰한다는 응답(19.6퍼센트)보다 신뢰하지 않는다(43.0퍼센트)는 응답이 많았다. 한마디로 갈등과 불신이 심각한 상태다.
사회통합위원회 노대명 전문위원은 “지난 수년간 세계 각국은 사회통합 문제에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며 사회통합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했다. “사회통합이란 세계화와 기술 발전, 평균수명 증가 등 급격한 사회경제적 대전환기에 발생하는 제반 사회갈등을 극복할 수 있는 사회역량을 나타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최근 세계화의 바람 속에서 한바탕 광풍처럼 몰아쳤던 미국산 쇠고기 파동에서 나와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매도하고 타도의 대상으로 삼는 갈등과 대립의 극단을 목도했다.
‘멜팅포트(Melting Pot·인종의 용광로)’와 ‘샐러드바(Salad Bar)’라는 용어를 들어봤을 것이다. 다양한 인종과 종교, 문화가 공존하는 미국이 과거에는 ‘멜팅포트’ 개념으로 이질적인 요소들을 하나로 녹여 융합하는 사회통합을 추구했다. 그러나 이러한 융합이 결국 다른 것에 대한 소외와 차별을 낳아 최근에는 ‘따로 또 같이’ 조화를 이루는 ‘샐러드바’ 개념으로 사회통합 방식을 전환했다는 것이다.
우리에게도 ‘비빔밥’이라는 훌륭한 모델이 있다. 자부심 높은 우리 국민이 지향하는 신뢰할 수 있는 사회, 계층·이념·노사·지역갈등이 사라지고 누구에게나 균등한 사회는 서로 다름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비빔밥과 같이 다름이 어우러질 때 가능할 것이다. 크리스마스에 동자승을 초대하는 것처럼 말이다.
글·박경아 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