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무생각

임정효의 호주머니 속의 캥거루

하산(河山) 2018. 5. 10. 07:41

호주머니 속의 캥거루


임정효                       

인천 정각중학고 1학년 6반 


  어릴 때부터 주머니가 있는 옷이 아니면 입기가 불편했다. 

이것저것 많이 챙겨다니는 성격도 한몫 했을 뿐더러, 군것질에 눈을 뜬 초등학교 고학년 때는 아예 휴대용 쓰레기통으로 전락하기도 했다. 

애용하던 크로스뱃도 중학생이 되니 교칙위반이라, 더욱이 주머니에 의지하게 된 것이다. 

겨울만 되면 얼음장처럼 차가웠던 손도 주머니에 잠시 찔러넣고 있다 보면 어느샌가 따뜻해졌다. 

이렇듯 주머니는 오랜시간 나와 함께하며 여러 따스함을 안겨다 주었다. 

다른 이에게 따스함을 전하는 특성은 비단 옷에 달린 주머니의 것만이 아니다. 


  어미 캥거루의 주머니는 아직 어린 캥거루가 꿈을 꿀 수 있도록 돕고, 아기 캥거루가 세상을 마주볼 수 있을 때까지 아기를 따뜻하게 감싸준다.

  주머니는 자그마한 수납품을 언제든지 꺼내어 쓸 수 있도록 품고, 시리고 차가운 손이 잠시나마 따스함을 느끼도록 보듬어주며, 아기 캥거루의 어린 밤을 지켜준다. 

주머니 그 자체, 텅텅 비어 공허해보이는 그 주머니는 사실 그리 대단하지 않다. 

그 주머니가 품고 있는 따스함은 깊숙이 숨어 살피기 어렵고, 누군가의 꿈을 지켜줄 것 같다고는 더더욱 볼 수 없다. 그러나, 주머니가 무언가를 품게 되었을 때, 우리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따스함을 느낀다. 

주머니는 비어 있기에 물건을 넣을 공간이 있고, 차가운 손을 찔러넣을 틈이 있고, 어린 캥거루를 보듬을 품이 있다.


  따스함과 풍족함을 느끼려고 굳이 욱여넣을 필요는 없다. 

그렇다고 한없이 비워두기만 해도 안되는 것이다. 

텅텅 빈 주머니보다 넘쳐 흐른 주머니가 더 따뜻하고, 넘쳐 흐른 주머니보다 아기 캥거루 한 마리가 꿈꾸는 주머니가 훨씬 더 따뜻하다. 

사람들의 주머니도 같을 것이다. 

채우려 노력하지 않으면 공허하지만, 채우려고만 하면 숨이 막힌다. 그저 잡동사니 몇 가지, 꼼지락거리는 손가락. 그것도 안되면 꿈꾸는 캥거루 한 마리 들여놓으면 될 것이다. 

그것으로 캥거루는 따스함을 얻고, 그 캥거루가 세상을 향해 나아갈 때가 되면 분명히 주머니도 앞으로의 온기를 얻을 것이다.


 가지고 다닐 것이 많던 어린아이 시절에도, 사탕 껍질을 버려둘 곳이 필요했던 초등학생 시절에도. 추운 겨울 손이 시렸던 작년 겨울에도. 지구 반대편에서, 세상을 마주볼 용기를 키워가던 작은 캥거루의 꿈꾸는 시절에도 주머니는 어김없이 품을 벌렸다.  

온기를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이든 품어 따스함을 나눈 것이다.



  나는 한때 누군가의 주머니에 있던 잡동사니였을 것이다. 

나의 나쁜 버릇과 고쳐야할 단점들은 또 누군가의 주머니 안 사탕 껍질이었을 것이다. 

수많은 이들의, 한없이 감사한 이들의 주머니를 거쳐 지금의 내가 존재한다. 잠시 품어주고, 나쁜 점은 버려주어 이런 내가 이자리에 있는 것이다. 

누군가의 주머니 속 존재이기만 했던 나는 주머니가 될 것이다. 

주머니들에게서 받은 온기를 그러모아 언젠가 주머니 속에 머무를 존재에게 나눠주고 싶다. 

나는, 나의 주머니에 꿈꾸는 캥거루 한 마리를 품을 것이다. 작고 여리지만, 누군가를 위해 주머니가 되어 줄 수 있는 그런 아기 캥거루를 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