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치인들의 착각과 불행한 삶
山속에서는 산을 알지 못한다 라는 말이 있는데, 그 말은 산에서 떨어진 곳에서 산을 바라볼 때 그 산의 전체적인 부분을 속에서
바라보는 것보다 많이 알 수 있다는 말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국내인의 안목으로 보는 국가관과 민족성 그리고 가치관 같은 것들의 전체적인
이해와 분석은 국외 거주민의 눈에 의해 좀 더 객관적으로 보이고 분석될 경우가 있을 것이다.
나는 한국의 정치인들이 시도 때도
없이 국회 의사당이라는 그들이 출입하면서 국민의 복리와 국가의 안정을 위해 법을 분석하고 바꾸거나, 새로운 법을 만드는 일을 해야하는 장소를
떠나 소위 장외투쟁을 하는 방법에 대하여 참으로 개가 탄식하듯 개탄해 마지 않는다. 그리고 밖에 나와 촛불 하나 달랑 들고 거리에 앉아 구호를
외치는 이들에게 엄청난 세비를 지출하는 국가의 운영에 대하여도 불만이 많다.
국민들이 그들에게 고액의 월급을 주며, 그들을 국민의
대변자로 삼고, 국태안민을 쟁취하는 生死의 최전선에 배치한 이유는, 그들이 법을 연구하고 분석하며, 그 법이 그들의 섬김의 대상이 되는
국민들에게 이익을 공급하고, 국민의 삶과 생활에 안정을 가져다 주는지를 가늠하는 일에 전무하라고 임명했음을 한시도 잊어서는 않된다. 그들은
국민에 의해 고용된 일꾼들이며, 그들의 임무는 고용자가 원하는 일을 하는 것으로 임무는 달성된다.
그런데 국회 건물의 고급
사무실에서 국민들을 위해 제정된 법을 연구하고, 그 법이 국민들에게 어떤 이익과 안정된 삶을 더 많이 공급할 수 있는지를 찾는 일은 하지 않고,
거리에 나가 길거리에 주저앉아 고함을 지르는 행위는 임무를 망각하고 지급되는 임금을 횡령하는 범죄의 행위를 자행하는 것이다. 법의 제정을
위임받은 사람들이 고액의 월급을 받으며 범법행위를 먼저 하고 있음은 한국의 법체제에 큰 문제가 있음을 알린다.
그리고 그들
스스로가 민주주의의 열사로 자처한다면, 그들은 민주주의 다수결에 의한 임무수행을 취하고 따르면 될 것인데, 왜 이들은 적절한 의사진행의 수순을
따르지 않는가? 그러면서 거리에서 구걸하는 걸인 같이 앉아 외치며, 왜 마음 약한 국민들을 선동하는 범법행위를 저지르는지 정말 이해되지
않는다. 국민들이 멀쩡한 이들은 거지로 만들었는가? 정말 그런 것인가?
역사를 통해 한민족은 민초들의 개인적 불만의 호소가
정부측이나 윗 계급층에 먹혀들거나 듣겨지지 않았다. 특히 조선조 500년의 역사는 대화와 화합의 장소나 시간을 몰수했다. 더더구나 근대 한국의
정치적 혼란과 해방 이후의 부패된 정치인들의 국민을 기만하는 삶은 민중들에게 "민중봉기" 외에는 다른 적절하고 적합한 방법을 제시하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는 4.19 그리고 5.16과 같은 백의민족들에게는 생소한 집단적 반항을 택했고, 그 와중에 정치학을 겉모양으로 배운
학생들에게 독재타도를 외치면서 거리를 질주하게 만들었던 상황은 현재 국회의원을 포함한 많은 정치인들이나 행정부에서 고위층에 앉은 철가방
소유자들을 대량으로 量産했다. 우리는 이들을 왜곡된 민주주의의 사생아들이라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정치인들은 국회 의사당이라는 공간에서
다수결에 의한 법 제정이나 법규를 고치는 일은 익숙하지 않을뿐더러 잘 모른다.
그들이 해왔던 행위라고는 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고함지르고, 떼로 모여 달려들고, 부수고, 던지며, 입에 거품을 무는 야차 같은 "투쟁"뿐이었다. 그래서 야당이라는 "딱지"가 붙으면
자동적으로 "투사"가 되고, 이들 스스로는 자신들을 "열사"로 자천하는 웃기는 일들이 반복되고 있다.
불행하게도 이들이 사는 세계와
삶은 아직 군사정부의 한 때에 머믈고 있다. 대통령이 누가 되던지 그 대통령은 박 정희 대통령에 이은 몇몇 국가수반들의 얼굴과 존재에서 떠나지
않고, 그래서 이들에게 대통령은 누가 되든 타도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왜곡된 정치관과 가치관 그리고 국민의 마음을 잘못 읽고 있는 이들에게
자신 외에는 대한민국의 대통령 후보가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 한나라당은 여당이고 민주당은 야당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야당이
되고, 민주당이 여당이 될 경우 이 악순환은 다시 반복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악순환의 연결고리가 언제 누구에 의해 어떻게 무슨 방법으로
끊어질지에 대한 질문은 안타깝게도 없으며, 이것이 우리 민족이 당면하는 비극이 아닐까?
민주주의의 이론에 따르면, 이 악순환의
열결고리를 끊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국민이다. 국민의 의식이 upgrade되고 update되지 않는다면, 아마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우리 국민에게 요원한 일이 되지 않을까?
39 군봉식구들이 이런 상황에서 국가와 국민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이제 힘도 없고 사회적 존재감도 스러져가는 우리에겐 선택의 여지가 많지 않다. 그러나 한국민들이 대대손손 소유하고 물려준
가정교육이라는 전가의 보도를 우리는 아직 소유하고 있다.
칼을 뽑으면 썩은 호박이라도 친다는 경상도 사나이들의 기질은 우리
자손들에게 우리 인생의 구구절절했던 인생사를 이야기 형식으로 들려주며, 이야기를 통한 역사와 人性공부를 시키는 것이 우리가 택할 수 있는
유일하면서 가장 강력한 방법이 아닐까? 口傳, 즉 입으로 전달되는 공부는 인류의 역사를 통해 그 효력과 장구함이 여실히 증명되었고 증명되고
있다. 예를 들어 현존하는 모든 종교는 발생시부터 사람들에 의해 경전이 집필될 때까지 입으로 그리고 이야기 형식으로 전해져 왔다.
손주들과 금강공원을 산책하며 동래고등학교 시절의 호랑이가 뛰고 용이 움츠렸던 이야기를 해주며, 동고인이 소유한 의리와 절개 그리고
단합성 같은 아름다운 유산들을 구전을 통해 물려주자. 나이들면 어쩔 수 없이 이야기꾼이 되는 인생을 잘 이해하고, 손주들에게 들려줄 구수한
이야기의 편집을 계속하자. 39 군봉식구들이여, 내년에도 신임 임원들과 함께 진정한 민주주의의 삶을 계속 살며, 인생을 즐기고, 송년모임을 통해
정과 사랑을 뜸뿍 받고 나누자. 사랑한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