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무생각

"이제 시간과 공간을 버려야겠다.. . . ."

하산(河山) 2010. 8. 23. 17:44
‘우레와 같은 침묵’으로 돌아간 법정 스님
2010-03-14 오후 05:33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이제 시간과 공간을 버려야겠다. 이 세상에서 저지른 허물은 생사를 넘어 참회할 것이다. 내 것이라고 하는 것이 남아 있다면 모두 맑고 향기로운 사회를 구현하는 데 사용해달라. 머리맡에 남아 있는 책은 내게 신문을 배달하던 사람에게 전해달라.”

평생 ‘무소유’의 삶을 살고 ‘아름다운 마무리’를 강조한 법정 스님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다. 법정 스님이 3월 11일 오후 1시 52분쯤 서울 성북동 길상사에서 입적했다. 법랍 55세, 세수 78세. 2007년 폐암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아온 스님은 이날 낮 입원 중이던 삼성서울병원에서 길상사로 몸을 옮겼다. 스님은 병상에서도 계속 강원도 오두막으로 가고 싶어 했지만 그곳에는 눈이 쌓여 접근이 불가능해 상좌 스님들이 길상사로 모셨다.

법정 스님은 생전에 산문집과 법문을 통해 삶은 매 순간의 있음에 불과하고 영원한 것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매 순간을 최선을 다해 사는 것, 나답게 사는 것이 삶의 본질이라고 가르쳤다. 스님의 산문집과 법문이 많은 사람의 가슴에 울림을 준 것은 그가 자신의 말과 글과 일치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1932년 전남 해남에서 태어난 법정 스님은 1954년 당대의 선승 효봉 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송광사, 쌍계사, 해인사 등에서 수행했고 1975년부터 17년간 송광사 뒷산 불일암에서 홀로 살았다. 스님의 명성이 높아져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지자 1992년 다시 출가하는 마음으로 강원도 화전민이 살던 산골 오두막으로 옮겼다. 스님은 자신이 창건한 길상사의 회주를 한동안 맡았을 뿐, 그 흔한 사찰 주지 한 번 지내지 않았다. ‘나답게’ ‘단순하게’ 사는 길을 찾아 버리고 또 버리며 살아온 삶이었다.

법정 스님에게는 삶과 죽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우주 질서의 한 부분이었다. 류시화 시인이 법정 스님에게 죽음에 대해 물었을 때 스님은 “우레와 같은 침묵으로 돌아가는 일이다”라고 대답했다. 스님은 입적 전 부질없는 장례의식을 치르지 말라고 당부했다.

“절대로 다비식 같은 것을 하지 말라. 이 몸덩이 하나를 처리하기 위해 소중한 나무들을 베지 말라. 내가 죽으면 강원도 오두막 앞에 내가 늘 좌선하던 커다란 넙적바위가 있으니 남아 있는 땔감을 가져다가 그 위에 얹어 놓고 화장해달라. 수의는 절대 만들지 말고, 내가 입던 옷을 입혀서 태워달라. 그리고 타고 남은 재는 봄마다 나에게 아름다운 꽃 공양을 바치던 오두막 뜰의 철쭉나무 아래 뿌려달라. 그것이 내가 꽃에게 보답하는 길이다. 어떤 거창한 의식도 하지 말고, 세상에 떠들썩하게 알리지 말라.”

법정 스님은 강원도 산골에서 홀로 지냈지만 대중과의 소통을 거부하지 않았다. 1996년 고급요정이던 대원각을 기부받아 길상사를 창건한 후 1년에 몇 차례씩 법문을 했다. 스님은 법문을 통해서 시대의 잘못을 꾸짖고 세상살이의 번뇌를 호소하는 대중들을 위로했다.





 

또한 탁월한 글 솜씨로 여러 권의 베스트셀러를 낸 작가이기도 했다. 스님은 해인사에 머물 때 팔만대장경이 있는 장경각을 가리켜 “빨래판같이 생긴 것이오?”라고 묻던 아낙네의 말을 듣고 뛰어난 지혜와 자비의 가르침이라도 알아볼 수 없는 글자로 남아 있는 한 한낱 빨래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부처의 가르침을 누구나 알 수 있는 쉬운 말과 글로 옮겨 전할 방법을 찾았다. 이런 뜻을 담아 1976년 펴낸 책이 스님의 이름과 동의어처럼 불리는 산문집 <무소유>다. 그 외에도 법정 스님은 <내가 사랑한 책들> <아름다운 마무리> <한 사람은 모두를 모두는 한 사람을> <일기일회> 등 30종의 책을 썼다.

하지만 속세의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난 법정 스님에게 책은 ‘말빚’일 뿐이었다. 스님은 자신의 책과 관련해 “그동안 풀어놓은 말빚을 다음 생으로 가져가지 않겠다. 내 이름으로 출판한 모든 출판물을 더 이상 출간하지 말아달라”는 유언을 따로 했다.

법정 스님의 입적으로 우리 사회는 또 한 사람의 정신적 스승을 잃었다. 법정 스님의 인품을 존경했던 추모객들의 행렬은 법구(시신)가 송광사로 옮겨지기 전까지 계속 이어졌다. 조문을 하는 시민들은 스님의 유언대로 조용하고 단출하게 보내드리기 위해 묵언과 삼배로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길상사에는 맑고 청아한 죽비 소리만 가득했다.

사회 각계 인사들의 조문 행렬도 끊이지 않았다. 조계종 총무원장인 자승 스님과 전 총무원장 지관 스님 등이 조문했고 원불교 박청수 교무, 장경동 목사 등 타 종교인들의 추모도 잇따랐다. 법정 스님은 불교계의 큰 어른이었지만 천주교나 개신교, 원불교 등 타 종교에 대해서도 담을 쌓지 않았다. 고 김수환 추기경을 길상사 개원 법회에 초대하는가 하면, 천주교 신문에 성탄 메시지를 기고하고 명동성당에서 강연을 하기도 했다.
 

이명박 대통령도 3월 12일 오전 길상사를 찾아 조문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평소에 제가 존경하던 분이시고, 그래서 저서도 많이 읽었는데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 이계진 한나라당 의원 등 많은 정치계 인사들이 길상사를 찾았다.

3월 12일 정오 어른 몸 너비 정도의 대나무 평상 위에 가사로 덮인 법정 스님의 법구는 법정 스님의 출가 본사인 순천 송광사로 옮겨졌다. “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온 세상을 다 가질 수 있다”고 말했던 법정 스님은 입적하는 길에도 관 없이 무소유의 정신을 보여주었다. 법정 스님의 다비식은 13일 오전 11시 송광사에서 진행된다.

다비식을 준비하는 진화 스님은 “법정 스님은 번거로운 장례 절차를 일절 행하지 말고 수의도 준비하지 말고 승복을 입은 상태로 다비하며 사리를 찾지도, 탑을 세우지도 말라고 상좌에게 늘 당부했다”고 말했다. 조계종과 송광사는 스님의 유지를 받들어 공식적인 장례위원회는 만들지 않기로 했다. 또 간결한 다비식 외에 영결식 등 특별한 장례의식도 치르지 않을 예정이다. 조화나 부의금도 받지 않는다.
 

글·이혜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