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을 맞는 민족의 감격과 울음 속에서 탄생의 아우성을 지르며 태어난 갖난아이들이 올해로 67세, 햇수로는 68년을 산 해방둥이들이다. 그리고 이 해방둥이들이 39회 기수의 벌떼들이고...
일제 점령기의 잔재와 해방의 기쁨, 감격, 그리고 희망을 온 몸에 담고 태어났던 아이들은 영양실조로 말라붙은 엄마의 젖꼭지가 떨어지듯 빨아댔지만, 필요한 영양분을 섭취하지 못한체 6.25 사변을 마지했다. 공습에 대비한 훈련을 받을 때는 그것을 재미로 여겼던 철없던 꼬맹이의 날들이었다.
"가교사"라는 생소한 단어를 들으며, 서울내기 다마내기 고함지르고 놀리던 피난온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꼬마들은 지식의 장터에서 유년기를 시작했다. 도덕시간에는 선생님들의 침 튀기는 삼강오륜과 당신들이 자신의 인생에 맞게 정립한 공맹사상으로 세뇌교육을 받았다.
태극기 들고 환영인사하기 위해 길가에 서있던 날은 우리 모두에게 미니(mini-) 원족날과 같았으며,그래서 이 승만 대통령이 수영공항에 자주 오시기를 기다리던 그 시절을 지냈다. 그리고 그 할아버지의 백발 얼굴에 떠오르던 빙그래 웃음이 참 멋있다고 여겨지던 어린시절이 엇그제 같다.
그 할아버지께서 우리 모두에게 남기신 반공과 반일사상은 60년이 지난 오늘에 이르기까지 당신의 사상이 옳았고, 한국 민족의 앞날은 이 사상을 간직하며 상황에 맞춰 최선의 경주를 하는 것이 민족부흥과 백년대계의 기초가 됨이 확실해졌다. 선견지명이 있었던 선각자이었고, 정치인이었으며, 우리의 할아버지였다.
꿈속에서 몽정을 한지 조금 지났고, 자지 근처에 털이 나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동래고등학교에서 청장년의 삶을 준비하는 3년을 같이 보냈다. 입학해서 처음 만나는 친구들과의 서먹서먹했던 기간이 끝나갈 때 선배들의 고함소리에 몰려 소떼 같이 강당에 들어갔고, 품 속에서 식칼과 태극기를 꺼내 고함지르며 몰아내는 선배들의 성화에 4월 19일 학교를 나서 서면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의 행위가 데모라는 사실도 달리며 알았다.
연산동 입구에 도달하니 우리 앞에 겨누어진 총알이 장진된 기관포가 버티고 있고, 무장 군인들이 한치의 거리도 양보 못하겠다는 굳은 얼굴로 서있음을 보고 오줌을 지리기 직전, 뒤에 있던 친절한 선배 한분이 철길로! 라는 자상한 지시를 내려 철길을 달렸다. 달리며 우리는 친절하고 자상하며 대단한 선배를 모셨구나 라는 생각을 잠시 한 적이 있었던 것 같다.
한참 달리는데 철로변에 판자촌 같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고, 아주 젋은 여자들이 탱탱한 젖가슴이 보이는 속치마 바람에 나와 손을 흔들어주고 나중에 놀러오라는 초대까지 했는데, 나는 그곳이 어디며 그들이 누구인지를 몰랐다. 데모 끝내고 돌아올 때 친구들에게 물었더니 애들은 몰라도 된다는 간단한 대답만 들었다. 같은 1학년인데...
나중 그곳이 집창촌이었고, 그 누나들이 바로 그들이었다더라. 그래서 나에겐 4.19 학생의거라는 거창한 문구보다 당시 뛰면서 본 그 누나들의 가슴이 보였던 속치마 차림의 몸매가 더 인상적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다음날 등교했더니 3학년 선배들이 우리가 열사(烈士)가 되었다던데, 나는 일제 점령기의 창씨개명 같이 이름을 다 열사로 바꾼줄 알았다.
온갖 추억과 희로애락의 추억이 만들어진 고교 3년의 학창생활을 끝내고 많은 친구들이 뿔뿔히 헤어졌다. 군사정권이 시작되었고, 나중에 알았지만 꽤 여러 친구들이 월남전에 참전했고, 그 참전군인들의 핏방울로 얼룩진 달러로 경부고속도로와 같은 국가적 공사가 시작되고 그 유명한 새마을 운동이 펼쳐졌다.
새마을 운동에 후발기수로 참여한 해방둥이들의 삶은 문자 그대로 개 같이 일하며 조국의 산업화에 동맥의 역활을 담당했고, 그로부터 수십년이 흐른 지금 2012년의 삶을 살고 있다. 해방의 순간부터 지금까지 급변에 급변의 과정을 거친 한국 근대화 역사의 증인으로 39 벌떼들은 기억될 것이며, 39 군봉이 만든 봉밀로 인해 오늘의 아이들이 존재함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여러 친구들이 우리보다 먼저 떠났다. 그러나 더 많은 친구들이 생존해 있으며 오늘도 자손들에게 보호막의 역활을 해주며 그들의 인생에 조금이라도 더 깊은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노심초사 애쓰고 있다. 지난 70년에 가까운 삶의 필림(film)을 뒤로 돌려볼 때 후회될 일도 많고 자랑스러운 일들 또한 여러 바구니에 담을 수 있을 정도로 풍성하다.
이제 우리는 무엇을 언제 왜 어디에서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생각해본다. 아직은 산행을 거뜬히 마칠 수 있는 체력이 있고, 후배들 앞에서 존재감을 당당히 보여줄 수 있는 기세 또한 넉넉히 소유하고 있다. 소위 말하는 "자랑과 정열"을 아직까지는 소유하고 있음을 자타가 동의하는 이 나이에 우리는 위의 질문을 해봐야할 것 같다.
조금 후에는 내가 원해도 할 수 없는 삶을 살게 될 것이고, 아무리 물질적 여유가 있다 하더라도 몸이 따라주지 못하는 생활을 살 수밖에 없는 시간을 갖게 될 것이다. 해방의 해에 태어나 한국 민족에게 자유와 희망을 건네 준 해방둥이들이 어떤 마무리를 지을 것인지에 대한 생각이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우여곡절이 많았고, 희로애락 속에서 눈물도 웃음도 유난히 많이 터트린 세대가 해방둥이 세대다. 부모님들을 보냈고 우리 또한 준비를 하는 와중에 시작에 걸맞는 맺음을 후손들에게 남기기 위해 조용히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봐야할 것 같다.
남은, 어쩌면 우리 생에 가장 위대한 일이 될 마무리 작업을 끝내기 위해 건강은 우선 그리고 필수조건임은 두번 말하지 않아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건강하자. 사랑한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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